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1년 지방선거 (문단 편집) === 눈에 띄는 후보들 === [[파일:최동원벽보.jpg]] 부산직할시(현 [[부산광역시]]) 시의원 선거에서 당시 갓 은퇴한 야구선수 '''[[최동원]]'''[* 선수협 파동이 계기가 되어 최동원은 1988 시즌이 끝나고 [[삼성 라이온즈]]로 트레이드 되었으나, 1990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.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지방선거에 나오게 된 것.]이 "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정치의 강속구"라는 슬로건과 함께 꼬마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. 지역구는 [[서구(부산)|서구]]. 하지만 큰 표차로 낙선했다. 최동원이 상도동계와 안면이 있었고 이전에 김영삼이 직접 최동원을 섭외하려고 시도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소신 출마였던 셈. 게다가 당시 서구는 김영삼 본인의 지역구였다. 때문에 최동원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민주당계의 차기 부산광역시장감으로 거론되었을지 모른다는 [[떡밥]]이 간간히 흘러나오고는 했었다. [[http://www.ohmynews.com/NWS_Web/view/at_pg.aspx?CNTN_CD=A0001906256|#]] [[파일:이선희벽보.jpg]] 가수 '''[[이선희]]'''는 전성기 시절에 민주자유당의 서울시의원([[마포구]])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. [[http://blacktv.tistory.com/1151|#]] 구호는 "실천하는 마포의 딸". 하지만 야당세가 강한 전통 야당 텃밭 마포구에 일종의 인기성 저격 공천을 한 것이라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, 애초 민자당이 이선희의 성향과도 맞지 않아 결국 민주당으로 옮기고 임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정치계를 은퇴했다. 여담으로 그 와중에도 가수 활동은 했다. 자세한 건 항목 참조. [[파일:허경영벽보1991지방선거.jpg]] '''[[허경영]]'''도 [[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]] 이력을 거쳐 무소속으로 서울 [[은평구]](갈현동) 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전력이 있다(...). ~~만약 이 때 당선되었다면 [[하늘궁|지금의 모습]]이 아닌 정상적인 모습이었을지도~~ 결과는 21.10%를 득표하고 3위로 낙선. [[http://k05078.tistory.com/82|#]] 하지만 3개월 뒤 광역위원 선거에 민중당 소속으로 서울 [[은평구]] 제1선거구에 후보로 출마하는 끈기를 보여준다. 그러나 전 선거 득표율의 절반도 안되는 8.50%를 득표하고 4위로 또 낙선했다. [[메가스터디]]의 창업주인 [[손주은]]의 아버지인 [[손용택]] 전 도의원도 이 선거에 민주자유당 후보로 창원군2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. [[http://www.knnews.co.kr/news/articleView.php?idxno=1207876|#]] [[김을동]]도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회 선거에 출마했다. 당시 [[장군의 아들]]이 한창 인기를 끌었던 때였던지라 후광효과를 기대해봤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. 그래도 다음 지방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는데, 얼마 지나지 않아 [[자민련]]에 입당하면서 정치노선을 바꾸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